니코스 카잔차키스와 책 그리스인 조르바
책 그리스인 조르바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작품입니다. 니코스 카난차키스는 1883년 크레타 섬에서 태어납니다. 당시 그리스는 터키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그의 친지들 중에는 그리스의 독립운동에 투신한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카잔차키스는 1908년에 파리로 건너가 니체 등의 철학을 공부하면서 그들의 영향을 받습니다.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북아프리카 등을 폭넓게 여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사상과 경험이 작품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는 펠로폰네소스에서 탄광 사업을 하기도 했었고 복지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작가로서 그의 작품은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훌륭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노벨문학상과 인연이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니코스 카난샤키스는 현대 그리스 문학의 대표 작가이면서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1946년에 출판된 니코스 카차키스의 대표작입니다. 이 작품은 작가가 1917년에 탄광 사업을 함께 했던 실존 인물인 기오르고스 조르바와의 만남에서 영감을 얻어 쓰인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서 카잔차키스가 창조한 인물인 알렉시스 조르바는 그의 사상이 집약된 인물입니다.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사는 조르바는 카난차키스가 생각하는 이상적 인간상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당시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자유분방한 내용들을 여과 없이 담고 있어서 그리스 정교회로부터 신성 모독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때문에 한동안 그리스에서는 카나차키스의 작품 출간이 중단되기도 했었지만 지금도 많은 독자들이 사랑하는 작품이 바로 그리스인 조르바입니다. 이 책의 제목에서 그리스인을 강조한 이유와 자유로운 삶의 의미 그리고 주인공인 나와 조르바에 차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조르가바 그리스인인 이유와 자유로운 삶의 의미
먼저 작가가 이 작품의 제목에서 왜 그리스인을 강조했을까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알렉시스 조르바입니다. 작가는 이 작품의 제목을 그리스인 조르바라고 함으로써 그리스인을 특별히 강조하는 모습입니다. 조르바의 사상과 행동을 통해서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조르바는 자신의 인간적인 욕망에 충실하고 타인의 인간다움을 좋아하는 인물입니다. 한마디로 인본주의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본주의의 본상은 사실 고대 그리스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조르바의 사상과 언행을 그리스인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조르바의 수식어로 그리스인을 택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작가가 자신의 동포인 그리스인들이 조르바처럼 자유롭기를 원하는 마음을 제목에 담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을 통해서 그리스인들이 자유를 추구하도록 독려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결국 현대의 그리스인들이 과거의 그리스인들처럼 인간적인 자유를 추구하길 바라는 작가의 열망이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제목으로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자유로운 삶을 위한 조르바의 처방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조르바는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 현재에 충실하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조르바는 어제 일어난 일을 생각하지 않으며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동시에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가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의 생각을 잘 나타냅니다. 삶을 진지하게 대하는 등장인물 "나"는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이 많은 사람입니다. 조르바는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로 인해서 현재 나의 자유가 속박당한다는 것입니다.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사는 조르바의 생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소품이 바로 산투르입니다. 그는 산투르에 빠져 이곳저곳을 떠돌며 방랑 음악과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조르바는 자신이 죽는 최후의 순간에 산투르를 주인공인 "나"에게 유품으로 남기며 자신의 처방을 상기시킵니다. 매 순간마다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았던 자신처럼 진정한 자유를 맛보라는 의미입니다.
진지한 삶을 사는 나와 자유로운 삶을 사는 조르바
마지막으로 과연 주인공인 나는 조르바처럼 살 수 있을까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주인공인 나는 진지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진지한 성격 탓에 그의 절친한 친구로부터 책벌레라는 소리까지 듣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유분방한 삶을 동경합니다. 그는 자신이 동경하는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조르바를 보고 깊은 충격을 받게 됩니다. 조르바를 본 나의 첫 인상은 이렇게 표현됩니다. 조르바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하지만 젊은 과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표현하기를 주저하는 나의 모습은 자유분방함보다는 진지함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조르바는 주인공에게 자유분방함을 추구할 것을 끝없이 권합니다. 하지만 아마도 주인공은 끝까지 조르바의 자유분방을 담지 못했합니다. 하지만 진지하게 삶에 임하는 나라는 인물의 태도를 꼭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천성에 맞게 살아가는 것도 자유로움의 한 표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 것인가는 결국 개인의 선택입니다. 또한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에서 어떤 부분을 자유롭다고 느낄 것인가 또한 자신의 몫일 것입니다. 주인공인 나와 조르바 중 어느 한쪽이 옳고 그르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민을 보면서 그가 왜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는 책입니다.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