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 소개
책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체코의 국민작가라 불리는 보후밀 흐라발의 소설로 그는 1914년 체코의 브르노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당시 나치 독일에 의해 학교가 폐쇄되자 다양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그의 작품에 다양하게 녹아 있다고 합니다. 보후밀 흐라발이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늦은 나이라고 할 수 있는 49세입니다. 그렇지만 체코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프라하의 봄 이후에 책 출간이 금지되었음에도 조국을 등지지 않고 끝까지 남아 있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문학상으로도 인정받아 다양한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1997년에 입원해 있던 병원 5층에서 비둘기 먹이를 주다가 추락하여 사망해 체코 국민들의 아쉬움을 자아냈습니다. 책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원래 1976년에 집필된 소설입니다. 하지만 프라하의 봄 이후 그의 작품들이 출간이 금지되었던 탓에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1989년이 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폐집 처리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한 남자를 중심으로 인간의 내면을 깊숙하게 들여다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문학 애호가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은근히 많이 읽힌 소설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주요 줄거리는 한탸라는 폐지압축공이 35년간 해오던 폐지 압축이란 일에서 허무함을 느끼며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중요하게 생각해 볼 세 가지 부분에 대해 분석해 보겠습니다.
너무 시끄런운 고독이란 제목에 대한 분석
작품이 갖는 여러 의미 중 먼저 제목인 너무 시끄러운 고독에 대해서 분석해 보겠습니다. 이 길지 않은 소설의 제목은 너무 시끄러운 고독으로 역설적 표현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고독과 시끄럽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인데 이 표현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시끄럽지만 고독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독하지만 시끄럽다는 것으로 비슷한 의미처럼 보이지만 다른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시끄러운 외부의 상황 속에서도 내면이 고독하다는 뜻으로 두 번째로는 고독한 상황 속에서 내면은 시끄럽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인 한탸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후자의 해석이 적절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탸는 35년 동안 폐지압축공으로 생활해 온 사람으로 그는 외롭게 작업을 수행하면서 고독하게 살아온 인물입니다. 하지만 외부에서 보는 고독함과 다르게 그의 내면은 다양한 생각과 사상으로 뒤얽혀 시끄러운 상태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소설은 한탸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끝없이 느끼는 것들을 쏟아내는 형식이기 때문에 조용한 느낌은 아닙니다. 겉으로 평온하고 반복되는 듯한 일상 속에서 한탸는 내면의 갈등과 성찰 지식 습득을 끊이지 않고 해온 것입니다. 책에 나온 구절 중 그렇게나 시끄러운 내 고독 속에서 이 모든 것을 온몸과 마음으로 보고 경험했는데도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니 문득 스스로가 대견하고 성스럽게 느껴졌다는 부분에서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끓어오르는 내면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또한 이 시끄러운 고독은 한탸라는 한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표현이 아니라 그의 조국 체코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고요하고 평온해 보이는 체코지만 실제로 그 내부는 시끄럽고 끓어오르고 있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대견하고 성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한탸라는 한 개인이 아니라 역사적 혼란을 꿋꿋이 이겨낸 조국에 대한 찬사로 보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모습을 쥐의 모습으로 빗대어 표현한 이유
다음으로 쥐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의 모습에 대해 분석해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폐지 더미 속에서 살면서 폐지를 갉아먹고 살아가는 쥐들의 모습입니다. 한탸는 폐지 압축 작업을 하면서 일일이 쥐들을 분리해 낼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쥐들이 폐지와 함께 압축되어 죽어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쥐를 죽게 만드는 것에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쥐를 계속 부각하면서 이를 사람에 빗대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한탸만 하더라도 사실 폐지 더미를 처리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폐지를 갉아먹으며 살아가는 쥐들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탸보다도 고상한 일을 한다는 지식인들조차도 사실 책에 의존해 살아간다는 점에서 책을 갉아먹는 쥐와 다를 바 없음을 암시합니다. 특히 마지막에 자기 스스로 압축 기계 속으로 들어가 기계를 작동시키는 장면은 쥐에 자신을 직접적으로 이입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인간을 하찮고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기에 충분한 쥐떼에 비유한 이유가 있습니다. 쥐들이 떼를 지어 서로를 공격하는 것처럼 인간들 역시 무리를 짓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행동을 역사상 끊임없이 지속해 왔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쥐에 인간을 빗대며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행동이 폐지더미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쥐떼 간의 싸움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 햔탸의 극단적인 선택이 의미하는 것
마지막으로 한탸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자신이 견고하게 붙잡고 있던 것들이 허망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소설 내내 그는 자신이 해온 폐지압축공으로서의 삶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랬던 한탸가 자신이 운영하는 압축 기계의 20대 분량에 해당하는 효율성을 가진 신식 기계를 본 이후에 직업에 대한 위기의식을 갖습니다. 자신이 언제 실직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그가 평생을 바쳐온 직업의 지속성에 대한 믿음이 허망한 것임이 깨닫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는 더 중요한 허무함을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지식이 인간 사회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함을 발견한 데서 비롯됩니다. 그는 단순히 폐지를 압축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폐지 더미 속에서 가치 있는 서적들을 발굴해 꾸준히 지식을 축적해 왔습니다. 그 덕분에 상당 수준의 철학과 문학 지식을 갖추게 되었지만 직업의 안정성이 흔들리면서 찾아온 방화에 이런 지식들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두 가지의 허무함 때문에 한탸는 지난 35년간의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 존재의 부정에 직면한 그는 마침내 폐지더미 속에 자신의 육체를 밀어 넣고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 것입니다. 그의 결말을 통해서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서 자기 존재의 가치와 근원을 찾으려고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자신의 존재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