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로드짐은 조지프 콘래드가 1899년부터 1900년까지 1년 동안 지필한 소설입니다. 1900년 11월에 출간되었고 영미 문학의 대표작으로 손꼽힙니다. 이 소설은 인간의 내면과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학적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짐은 인간의 선과 악, 영웅과 악당, 그리고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의 내면의 변화를 통해 인간의 내면 세계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짐은 콘래드 자신의 모습을 반영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콘래드 자신도 젊은 시절에 해군으로 일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내면과 본성에 대한 통찰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책 로드짐은 콘래드의 첫 번째 성공작으로 이 작품으로 인해 콘래드는 영미 문학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이 책을 통해서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것과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는 제국주의자의 수법, 이 작품이 포착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서 짐의 선택
먼저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열정도 있고 능력도 있던 청년 짐은 바다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선언이 되지만 그의 말로는 비참했습니다. 브라운이라는 해적이나 다름없는 집단에 의해 자신을 "투안 짐"이라 부를 정도로 믿은 원주민들이 학살당하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복수자의 손에 목숨을 내던진 것입니다. 짐이 이런 상황에서 브라운에게 복수를 하거나 그곳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산다는 선택을 하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에게 있어 세상은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냉엄한 것이었고 파트산에서의 실패는 날개없는 추락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런 관점을 가지게 된 이유는 파트나 호 사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짐은 처음 승선한 대형 성박 파트너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나 자격도 없는 선장과 간부급 선원들을 따라 배를 버리게 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배와 승객을 버리고 자기 목숨만을 건지기 위해 달아나는 행동은 용서받지 못할 비겁한 일입니다. 게다가 선장 등이 모든 책임을 짐에게 떠넘겼기 때문에 그는 선원 자격을 박탈당하고 마는데 어린 시절부터 선원에 대한 꿈을 가지고 살아온 짐으로서는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이런 사건을 겪은 그로서는 세상은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하지 않는 곳이라는 인식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파트산에서의 실패로 인해 짐은 자신이 백인 사회에서도 원주민 사회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만 것입니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에서 실패자들의 선택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던 짐은 결국 스스로의 삶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작가의 제국주의자적 시각에 대한 주의
다음으로 이 소설에서 나타나는 제국주의자의 수법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조지프 쿤래드는 영문학 사상 상당히 중요한 작가임에 틀림없지만 당시 제국주의적인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암흑의 핵심"에서도 아프리카 문명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로 19세기 말 20세기 초 세계 최대 제국이었던 영국의 제국주의적 시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동남아의 파트산이란 곳에 흘러들어간 짐은 그곳에서 분열되어 있는 부족 간 갈등에 직면하고 한쪽의 편을 들어 서구의 기술을 통해 해결합니다. 이 일로 인해 그는 투안짐이라는 칭호를 받고 원주민 사회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게 됩니다. 이 장면은 영국을 위시한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즐겨 사용해 온 분할 통치, 분할 점령을 연상하게 합니다. 또 식민지 국가들은 분열되어 끝없이 갈등하고 있어서 이미 불안정한 정세였기 때문에 제국주의 국가들이 이를 안정화시켰다는 논리로 볼 수 도 있습니다. 한편 소설의 후반부에 나타나는 브라운의 모습은 우리나라도 당한 바 있는 "함포 외교"의 전형이기도 합니다. 무장한 데를 앞세워 파트사에 들어온 브라운은 원주민들을 자극하여 무력시위를 하고 뻔뻔하게 그 보상을 요구하며 위협합니다. 게다가 짐이 파트산의 원주민들에게 존중을 받는 이유 중 하나로 그가 백인이라는 인종적 우월함도 있다는 시각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인종적 존엄성이라는 표현이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모더니즘의 원리를 보여주고 있다는 문학적인 위상과 무관하게 이 소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제국주의적 시각은 분명히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품이 포착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에대한 고찰
마지막으로 이 작품이 포착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좋은 문학 작품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모습을 포착하여 이를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작품에서 다양한 모습을 표현할 수도 있고 어느 하나의 모습을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이 소설에 앞서 말한 대로 제국주의적 관점이 반영되어 있긴 해도 지금까지 살아남아서 전해지는 고전이 된 이유는 인간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가 콘래드가 포착한 인간의 모습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이를 끊임없이 개선하고자 하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존재였습니다. 주인공인 짐은 선원으로서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자격 박탈을 당하게 되고 그 이후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말로의 소개로 동남아시아를 근거지로 하는 상회에 취직하는가 하면 그곳에서 오래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더 깊숙한 곳으로 옮겨갑니다. 지혜의 이런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의지이며 좀 더 나은 여건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짐에게 파트산을 소개해 준 박물학자 스타인은 나비와 인간을 대조해 화려한 나비는 작은 흙더미를 발견하면 그 위에 가만히 앉아 있지만 인간은 결코 자기의 진흙더미 위에서 가만히 있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끝없이 움직이는 존재이며 여기서 움직인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옮긴다는 것에 국한하지 않습니다. 삶을 개선하기 위해 하는 모든 활동이 포함되는 표현이며 어쩌면 이런 열망과 의지가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활동의 동력일 것입니다. 더욱이 삶의 개선이라는 지표는 개개인마다 다르며 이를 위해 택하는 방법도 제각기 다양하기 때문에 사회는 다채로운 모습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