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무의미의 축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유명한 밀란 쿤테라의 작품입니다. 무의미의 축제는 2000년에 발표된 향수 이후에 무려 14년이 지난 후인 2014년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밀란 쿤테라의 가장 최근 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도 사람이기 때문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작품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쿤테라는 워낙에 오랜 기간 동안 작품 활동을 했기 때문에 이런 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묵직한 주제 의식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주목할 만한 것입니다. 작가가 어떤 점을 지적하고 싶어 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무의미함에 대하여
먼저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무의미함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시대가 무의미함을 만든다고 이야기합니다. 무의미의 축제라는 제목답게 이 소설 속에는 여러 가지 무의미한 이야기들이 나열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처음에 등장하는 다르델로는 우연히 공원에서 만난 직장동료 라몽에게 자신이 죽을병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자기 스스로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도 심지어 뤽상부르 공원을 배경으로 한 마지막 장면에서 한 남자가 나타나 조각상들에게 총을 난사하는데 그조차 어떤 의미가 있지는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처음과 끝 장면을 언급했지만 사실 이 소설은 정말로 무의미의 축제인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미를 찾지 못하며 사는 듯한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작가 밀란 쿤테라가 이들의 무의미한 모습을 보여주고 제목조차 무의미해 축제라고 지은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작가가 소설 속에 의도적으로 끼워놓은 스탈린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등장인물들은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그가 흐루쇼프 등에게 의미 없는 농담을 하고 큰 역할을 하지 않은 칼리닌의 이름을 따 도시의 이름을 지었던 일화들입니다. 작가가 스탈린 시대의 일화들을 굳이 삽입한 이유는 사람들이 무의미가 결국은 시대의 영향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독재자 스탈린 시대에는 모든 것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고 의미를 찾고자 하는 모든 행위들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시대가 가지고 있는 특징에 따라 사람들은 일부러 자신의 삶을 가볍게 대하려는 즉 일부러 무의미하게 받아들이려는 경향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에 사람들 역시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으려고 하고 가볍게 대하려 이유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 역시 같은 것이 아닐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알랭이 주목한 배꼽으로 보는 반복의 시대
다음으로 알랭이 주목한 배꼽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소설은 다양한 이야기가 뒤죽박죽 섞여서 전개되는데 그중에서 독자들의 눈길을 끄는 이야기 중 하나는 알랭의 배꼽 이야기입니다. 소설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알랭은 당시 여성들 사이에 배꼽을 드러내는 패션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서 독특한 생각에 잠깁니다. 지금까지는 남성들이 여성의 다른 신체 부위에 매력을 느꼈다면 앞으로는 배꼽의 매력을 느끼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 입니다. 그러면서 알랭은 배꼽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각 개인이 개성을 잃어가는 몰개성의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배꼽은 생물학적으로 어머니의 뱃속에서 영양분을 공급받던 태반의 흔적입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이 예외 없이 배꼽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데 현대인들이 이것에 주목하게 된다는 것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알랭은 반복을 상징한다고 말하는데 배꼽은 인간이 탄생부터 삶과 죽음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동일하게 반복하고 있다는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비슷한 모양의 배꼽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생각은 인간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누구나 특별할 것이 없다는 반증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작가 밀란 쿤테라가 이 소설의 첫머리에서 그리고 계속해서 알랭과 배꼽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반복의 시대가 왔음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반복의 시대란 이 소설의 제목이자 주제 의식인 무의미와 맥이 닿아 있는 것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무수히 반복되는 것들 중에 하나일 뿐이라면 특별한 의미를 찾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름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성에 사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무너질 아성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 입니다.것입니다. 알랭에게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여자 친구 마들렌이 있습니다. 알렌과 친구들은 스탈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마들렌을 떠올립니다. 그녀가 스탈린이 죽고 나서 수십 년이 지나 태어났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워지면서 그들은 시대가 흐름에 따라 스탈린에 대한 평가가 달라져 왔다는 것을 상기합니다. 한 인물인 스탈린에 대해서도 이처럼 시대마다 다른 평가가 내려지므로 각 개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체감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알렌과 친구들은 사람들은 살면서 서로 다른 시간의 지점에 놓인 전망대에서 멀리 있는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이야기를 나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각자가 가진 차이를 너무나 잘 표현한 문장입니다. 같은 시점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저마다의 다른 지점에서 자신만의 전망대를 짓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아성이라 할 만한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모든 주제에 대해서 같은 생각과 선호를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작가 밀란 쿤테라가 지적하고 싶은 핵심은 바로 이어지는 대화에서 나오고 있는데 죽은 사람들은 죽은 지 오래된 자들이 돼서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고 완전히 무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종합해 보면 우리 모두는 각자가 살아온 시대의 영향 아래 놓여서 제각기 견고한 아성을 쌓고 있지만 그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정말 여러 가지 각도로 무의미함을 표현합니다. 짧고 간단한 작품이지만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는 밀란 쿤테라의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