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벚꽃동산은 안톤체호프의 작품입니다. 벚꽃 동산은 1903년에 집필되어 이듬해인 1904년에 초연된 희곡입니다. 세 자매, 갈매기, 바냐 아저씨와 더불어 작가의 4대 희곡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34년에 상연될 정도였으니 당시 전 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제목만 봐서는 낭만적인 분위기일 것 같지만 사실 내용을 보면 낭만적이라기보다는 씁쓸한 느낌을 줍니다. 19세기 후반에 격변하는 러시아 사회상을 잘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옛 창유층과 새로운 시대를 주도할 사람들의 모습을 대비적으로 보여줍니다. 사회는 끝없이 변화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을 읽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세 가지인 러시아의 시대상과 어린이에 머문 류보비의 모습, 로파힌의 이성적인 행동과 그렇지 못한 모습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벚꽃동산을 통해 바라보는 당시 러시아의 시대상
먼저 이 작품은 당시 변화하는 러시아의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이 작품을 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고 등장하는 배경이나 인물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 수 있을 것 입니다. 우선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벚꽃 동산을 포함한 류보비의 영지는 러시아라는 국가를 상징하고 류보비와 가예프 등은 봉건시대의 귀족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농노의 후예지만 돈을 많이 버는 상인이 된 로파힌는 신흥계급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 외의 등장인물들은 지식인이나 일반 민중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귀족인 류보비의 영지를 로파인이 사들인다는 이 희곡의 주요 내용은 봉건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면서 러시아 사회를 주도하는 계급이 귀족에서 신흥계급으로 바뀌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벚꽃동산도 단순한 부동산이라는 의미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류보비와 가예프에게 벚꽃 동산은 과거 화려했던 시절을 회상하게 해주는 추억의 공간입니다. 그러므로 벚꽃 동산은 류보비 등이 상징하는 귀족 계급이 소중하게 여기는 봉건시대의 유산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파힌이 영지를 사자마자 벚꽃나무들을 베어내기 시작하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모습인데 주도 세력이 바뀐 러시아에서 구체제를 해체해 가는 모습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러시아 귀족인 류보비가 파리에 살았다는 점과 불어를 구사하는 모습은 당시 조국 러시아와 유리된 채 서유럽의 문화를 추구했던 귀족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문학 작품들은 대개 작가가 살던 시대의 모습을 어떤 방식으로든 반영하고 있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특히 그런 요소들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어린이 같은 천진난만함을 가진 류보비의 모습
다음으로 어린이에 머문 류보비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희곡의 첫번째 막은 류보비가 오랫동안 비운 저택에서 시작되는데 그 저택 중에서도 어린이 방이라는 곳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곳은 류보비가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사용하던 방입니다. 그녀가 자라서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은 이후에도 여전히 어린이 방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처음에 이 작품을 접하는 독자는 이미 나이가 먹을 대로 먹은 류보비의 방을 여전히 어린이 방으로 칭하는 것이 다소 이상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어가면서 이것이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치밀한 복선이 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류보비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대대로 물려받은 벚꽃 동산과 영지가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속수무책입니다. 그녀와 그녀의 오빠 가예프에게는 이 난국을 타개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시간만 보내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마치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 같이 보이고 그들은 나이만 먹었을 뿐 제대로 성인 구실을 못하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들은 오직 과거에 파묻혀 지내며 전혀 현실을 직시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류보비는 어린이 방에서 잠을 자며 동산을 바라보았던 옛날을 떠올리면 행복했다고 회상합니다. 이 말은 추억에 젖은 낭만적인 말로 들린다기보다는 전혀 성장하지 못하고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어린이로 남아 있는 그녀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성적인 로파힌은 어디까지 이성적일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로파힌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이 어디까지 이성적일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대다수의 등장인물들이 철이 없고 감정적인 생각과 행동을 합니다. 이 작품 속에서 그나마 이성적이고 냉정한 사람은 로파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파힌은 농노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변화하는 시대상 속에서 본인의 능력을 활용해 상인 계급으로 성장한 사람입니다. 그는 류보비에게 영지를 경매로 넘기지 않기 위해서는 벚꽃 나무들을 베어버리고 분할 임대를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제안합니다. 그의 제안은 이 동산에 대한 애정과 추억이 있는 류보비와 가예프 등에게는 가혹한 말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유일한 방법인 이성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랬던 로파힌은 류보비의 영지가 경매에 나오자 거금을 들여 그 영지를 자신이 사들이게 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영지의 경제적 가치가 그만큼 커서일 수도 있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농노로 지냈기 때문에 부엌에 조차 들어가지 못했다던 그 영지를 샀다는 그의 말을 보면 오히려 감정적인 요인도 의사결정에 크게 작용한 걸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는 할아버지, 아버지가 대대로 농로 생활을 하던 이 영지의 소유자가 됨으로써 대대로 내려오던 숙원을 풀어내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작품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성적이고 냉정한 인물로 보이던 로파힌이었지만 그도 이런 큰일을 결정함에 있어서 감상적인 면을 보이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할 때는 이성적 요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감상적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의사결정에 감상적 측면이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그 행동에 대한 해석에 도움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