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아노말리는 에르베 르 텔리에 작품입니다. 1957년에 태어난 에르베 르 텔리에는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입니다. 소설, 시, 희곡을 쓰는 문학 작가일 뿐 아니라 수학자이기도 하면서 언어학 박사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기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책 아노말리가 불어권 최고 문학상으로 꼽히는 공쿠르상 수상작이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작가입니다. 아노말리는 지난 2020년에 발표된 소설입니다. 비행기와 그 안에 타고 있는 승객들 모두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로 완전히 복제된다는 설정으로 인간 존재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으며 공쿠르상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학상의 후보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서 의미하는 내용인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와 세계에 큰 위기가 닥쳤을 때 사회 지도층별 태도에 대한 고찰, 이 소설이 진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
이 작품은 또 다른 자기 자신을 마주했을 때 보이는 반응에 대한 사고 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작가인 에르베 르 텔리에는 인터뷰를 통해서 사람이 자기 자신과 완전히 동일한 존재를 만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생각이 이 작품의 모티프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잔인한 상상력을 작품 속에서 충실히 구현하며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또 다른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전문 킬러인 블레이크는 또 다른 자신을 납치하여 그간 자신의 손에 희생당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죽게 하며 그 존재를 극적으로 부정해 버립니다. 그 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또 다른 자신과 공존하는 방법을 택하는데 가수인 어떤 사람은 잃어버린 쌍둥이를 찾았다며 그룹을 결성해 활동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한 아들의 엄마로서의 역할을 나누어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또 다른 자신의 행복을 위해 떠나기도 합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실행해 본 사고 실험의 결과로 완전히 같은 사람이더라도 나뉜 이상 그 존재의 본질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다른 이들과 나눠도 괜찮은 사랑이 있는가 하면 결코 나눌 수 없는 사랑이 있다 라는 문장에서 다른 이라는 표현 자체가 사고 실험의 결론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는 3월의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알고서도 담담하게 또는 냉정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빅토르 미젤에게서 다시 한번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이 소설이 단순히 재미있기만 한 작품이 아니며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담겨 있기도 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2. 세계에 큰 위기가 닥쳤을 때 사회 지도층의 태도
이 소설은 우리가 아는 세계에 큰 균열이 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비록 작가의 상상 속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이 소설은 세계에 큰 위기가 닥쳤을 때 사회지도층이 보여주는 각기 다른 모습을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사회지도층은 크게 세 부류로 과학자들,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정치지도자들입니다. 첫 번째 부류인 과학자들은 비행기와 그 안에 탄 승객들 전체가 복제된 전대미문의 사태에 직면하여 그 원인을 찾아내는 인무를 부여받습니다. 각계의 과학자들은 머리를 맞댄 끝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프로그램화된 곳이며 이 사건은 프로그래밍의 오류 같은 것이라는 결론을 얻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사건에 대해 쓸 만한 역할을 한 집단은 과학자 집단이 유일합니다. 두 번째 부류인 종교 지도자들은 미국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특별히 초대되어 모였지만 그들은 어떤 결론도 도출해내지 못합니다. 각자가 속한 종교의 관념에 따라 현상을 해석하려 할 뿐 머리를 맞대지 못하고 도리어 갈등만 일으키며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갔습니다. 세 번째 부류인 정치 지도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더욱 최악입니다. 그들은 진실 감추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입니다. 중국 주석은 얼마 전에 자국에서 있었던 똑같은 사건인 비행기와 탑승객들 전원이 복제된 사건에 대해 타국에 알리지 않고 은폐해 버립니다. 미국 대통령은 얼마 후에 에어프랑스 006호가 또다시 나타나자 이를 격추시켜 버리라는 명령을 내릴 뿐이었습니다. 이런 모습들은 재난을 소재로 한 작품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클리셰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런 클리셰가 대중들에게 수용되는 이유를 생각할 필요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정치나 종교가 더 이상 세상을 해석할 수 있는 특별한 툴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현대인들에게 가장 신뢰를 받고 있는 영역이 그나마 과학이라는 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이 소설이 의미하는 진짜 메시지 희망에 대해서
앞서 이 소설이 단순히 재미만을 제공하는 작품이 아니며 독자들이 인간과 사회에 대해서 생각을 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던지고 싶은 진짜 메시지는 작품의 중후반부에 나오는 빅토르 미젤의 인터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빅토로 미젤은 그의 직업이 소설가라는 점과 이 소설의 제목과 같은 아노말리의 작가라는 점에서 에르베 르 텔리 자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6월에 나타난 미젤은 3월의 미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아노말리라는 소설을 남겨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과학자들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이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우리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말 자체보다 "그 불행의 이름은 엘피스, 즉 희망입니다 온갖 나쁜 것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이죠"라고 말하는 미젤의 말이 더욱 와닿았습니다. 인간의 행동을 가로막는 것이 희망이며 인간의 불행을 오래 끄는 것도 희망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 속에 있던 가장 나쁜 불행이 바로 희망이라는 것으로 희망을 긍정적으로 보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상반됩니다. 미젤이 이 말을 한 이유는 사람들이 지금 바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입버릇처럼 흔히 하는 말 중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긍정적 시각이라고만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막연한 희망 기대 때문에 사람들은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보지 못하고 행동해야 할 시점을 계속 뒤로 미루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가장 나쁜 것은 희망이라는 말이 어쩌면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지금을 사는 사람들에게 던지고 싶은 진짜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