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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연을쫓는아이 계속되는 인생과 사회시스템에 대해

by 우다다122 2024. 3. 13.

 

책 연을쫓는 아이 표지
연을 쫓는 아이

 

책 연을 쫓는 아이의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난 미국 국적의 작가입니다. 1965년에 카불에서 태어난 그는 소련이 침공해 오자 고국을 탈출해 1980년에 미국으로 망명 정착합니다. 그의 이런 행적은 연을 쫓는 아이의 주인공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원래 본업은 의사였는데 의사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썼다고 합니다. 2003년 연을 쫓는 아이를 시작으로 1천개의 찬란한 태양, 그리고 산이 울렸다 등으로 유명합니다. 2003년에 발표된 연을 쫓는 아이는 할레드 호세이니의 데뷔작입니다. 작가 자신의 삶을 그대로 닮아 있는 아미르를 주인공으로 격동의 아프가니스탄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아미르와 하산의 인종과 종교, 신분을 초월한 우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주제뿐만 아니라 주제 의식을 보여주기 위해 몰아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문학적인 기법이 너무나 훌륭합니다. 이 글에서 책을 통해 계속되는 인생에 대한 것과 아미르의 성장과정, 차별이 만연한 사회시스템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계속되는 인생 앞에서 겸허해지는 인간

먼저 "젠다기 미그자라"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망명을 간 주인공 아미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수미쌍관식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아미르를 위해 연을 쫓던 핫산의 모습과 나중에 하산의 아들 소랍을 위해 연을 쫓는 아미르의 모습을 데비시켜 보여주고 있습니다. 독자는 그가 하산에게 저지른 잘못과 이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그에게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인 하산의 모습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자기 잘못을 속죄하기 위한 아미르의 행동까지도 읽어왔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에 깊은 감동을 받게 됩니다. 이후 아미르와 소라야 부부의 헌신적인 애정과 노력으로 평범한 행복을 누리는 소랍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소설이 마무리될 법도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미르는 목숨을 걸고 소랍을 미국에 데려오는 데 성공하지만 안타깝게도 소랍은 그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입었고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채 쉽게 열어주지 않게됩니다. 이 때문에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지난 여운이 남과 동시에 미완성으로 끝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소설이 이렇게 마무리된 이유는 인생은 계속된다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삶의 철학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실제 인생에도 때로는 드라마나 영화 같은 극적인 순간들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캄야브와 나캄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며 죽음 이전의 모든 이야기는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인 아미르도 그리고 그의 양자가 된 소랍도 지금껏 겪어온 위기와 카타르시스를 뒤로 하고 계속 살아가야 합니다. "젠다기 미그자라"는 계속되는 인생 앞에서 인간은 겸허해질 수밖에 없고 끝없이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이 소설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미르의 성장소설 변화해가는 아미르의 모습

다음으로 아미르의 변화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인 아미르의 시점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 아미르의 성장 소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그는 늘 당당한 아버지 바바와 강한 근성을 보이는 하산에 비해서 어딘지 모르게 주눅들어 지내고 스스로도 그런 자신을 의식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아미르의 모습은 단순히 소심한 성격을 보여준다기보다는 다소 방관자 같은 삶의 태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살면서도 아미르는 뭔가 적극적인 삶을 살기보다는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듯한 모습입니다. 그러던 그가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계기는 라임 칸과 다시 만나 하산의 비밀과 그가 남긴 유일한 혈육 소랍의 존재를 알고 나서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미르는 완전히 각성하게 되고 이 소설에서 처음으로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바바와 하산에게만 나타났던 강한 근성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으로 이는 아세프에게 끔찍한 폭행을 당하면서도 소랍을 끝내 구출해내는 장면에서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한편 아미르가 그간 방관자적인 삶의 태도에서 벗어나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어 인상 깊습니다. 그가 소랍을 찾아오기 위해 정말 오랜만에 고국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인 카불로 돌아가서 비참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아미르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는 카불이 이 정도로 비참한 도시는 아니었기 때문에 놀라지만 그를 차에 태우고 함께 온 파리드는 아프가니스탄은 원래 이랬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어린 시절 아미르가 유복한 집안에서 부족할 것 없이 자랐기 때문에 현실을 몰랐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 당시 그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도 관광객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가 마침내 고국의 진정한 모습에 눈뜬 것처럼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더 명확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이 장면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차별이 만연한 사회 시스템이 바뀌어야하는 이유

마지막으로 차별이 만연한 사회의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소설의 초반부는 아미르와 하산이 10대 초반의 어린 소년이었을 당시의 이야기인데 어린아이들이 겪은 일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소수민족 하자라족이면서 소수 이슬람 종파인 시아파인 하산은 파쉬툰족에게 있어서는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었고 그런 장면들이 여과 없이 나타납니다. 특히 아미르와는 끝까지 숙적이 될 아세프가 그 역시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보여주는 적대감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미르는 하산을 마치 친형제처럼 느끼고 아꼈지만 하산이 그런 대접을 받을 때마다 방관하거나 도망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그의 모습을 단순히 비겁한 행동으로 치부하는 것보다는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미르는 어릴 때부터 파쉬툰과 하자라의 차이, 수니파와 시아파의 차이에 대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학습해왔습니다. 파쉬톤족이 하자라족을 차별하고 지배하는 것과 수니파가 시아파를 혐오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는 인식을 체득해 왔던 것입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 사회는 혐오와 차별이 만연해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제도적으로 허용하고 장려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아미르같이 열린 사람도 폭력에 동조하거나 이를 방관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제도와 문화의 이름으로 펼쳐진 끔찍한 폭력에 대해서 개개인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겠지만 이런 모습들을 통해서 사회 체제가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왜 우리가 차별하고 혐오하는 사회 시스템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