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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잉글리시페이션트 등장인물들의 역할과 작가의도

by 우다다122 2024. 4. 22.

책 잉글리시페이션트 표지
잉글리시 페이션트

 

책 "잉글리시페이션트"는 마이클 온다체의 작품으로 그는 어릴 때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1954년에 부모가 이혼한 후에는 어머니와 함께 영국을 거쳐 캐나다로 이주했고 토론토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온다체는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독특한 작품 세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로 그의 작품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복잡한 서사를 펼쳐나가는 것이 특징이며 언어의 아름다움과 감각적인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4명의 인물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던 한 환자의 진짜 정체가 밝혀지며 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과 포용의 서사가 일품인 소설입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역할과 행동의 의미, 그리고 그에 따른 작가의 의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빌라산 지롤라모가 이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헤나, 알마시, 카라바지오, 킵 등 모두 4명인데 각자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은 빌라산 지롤나무에 흘러들게 됩니다. 다른 배경만큼이나 이들이 빌라에 오게 된 경로도 다양했는데 헤나는 간호사로, 알마시는 환자로, 카라바조는 헤나를 찾아서 키 작전 수행 중에 빌라로 오게 되었습니다. 이들 네 사람이 빌라에 모이게 된 시점 이후에 소설은 정신없이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각자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가 뒤섞이고 완전히 남남인 줄만 알았던 이들 사이에 얽힌 관계들이 밝혀집니다. 이런 복잡한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도록 만드는 필연적인 공간적인 요소가 바로 빌라산 지롤나무인데 이 빌라는 외부와 차단된 곳으로 묘사됩니다. 마치 폭우나 산사태를 만나 피하는 대피소처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재난을 만난 이들 네 사람이 피하는 장소의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작가 마이클 온다체가 외부로부터 차단된 이런 공간을 창조해낸 이유는 등장인물들의 사회적 가면을 완전히 벗겨내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곳에 모여 각자의 과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내놓는 모습은 마치 알몸으로 나서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의 제목이 왜 잉글리시 페이션트, 즉 영국인 환자인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의 정체는 사실 헝가리 출신 알마시였지만 이곳 빌라산 지롤라모에서는 그런 사회적인 자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알마시의 자아는 영국인 환자일 뿐이었고 그것이 바로 모든 껍데기를 완전히 벗어던진 알마시의 진실한 자기 모습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에서 빌라산 지롤라모는 등장 인물들이 허울을 벗어버리게 만드는 무대로 기능하고 있는 것입니다. 

키의 행동을 통한 작가의 의도 추측

앞서 말한 대로 빌라산 지롤라무에서 각자의 허울을 벗어버린 네 사람의 자기 고백은 서로 간의 용납과 포용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나치 독일에 협력했던 헝가리 사람 알마시에 대해 별다른 적개심을 보이지 않는 카라바지오의 모습이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이 다양한 사람들이 인류 보편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견해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 나타난 키의 행동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인도인인 킵은 원래 자신의 형과 달리 체제의 수능적인 인간형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영국군의 일원으로 참전합니다. 그 역시 빌라에 흘러들고 나서 다른 새 사람들과 어울리며 녹아들어가던 그 순간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백인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에 불타 미련 없이 빌라를 떠나버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히로시마 소식을 들은 킵은 같은 아시아인 같은 유색인종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느끼고 백인인 나머지 사람들에게서 떠나버린 것입니다. 스리랑카 출신인 작가 마이클 온다츠는 키의 분노를 통해 빌라에서 이루어진 용서와 화해는 백인들만의 것임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키비 히로시마 소식을 듣고 분개한 이유는 전쟁이 끝나고 이루어질 새로운 국제질서가 어떤 성질의 것인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키브의 행동을 통해서 작가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 세계 평화를 외치는 제국주의자들의 위선을 고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마시에 대한 헤나의 헌신

캐나다 출신으로 이탈리아 북부 군병원에서 후송된 군인들을 돌보게 된 헤나는 알마시를 맡게 되고 나서 큰 변화를 맞게됩니다. 알마시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 익명의 영국인 환자로 알려진 그를 돌보기 위해 그녀는 홀로 빌라에 남는 선택을 합니다. 일면식도 없는 온몸에 화상을 입은 환자를 위해 위험천만한 선택을 한 해나의 모습은 자신을 잊은 헌신적인 행동으로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해나를 어린 시절부터 알았던 카라바지오는 그녀에게 이렇게 충고하며 지나친 자기 희생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기까지 합니다. 그것은 카라바지오가 보기에 영국인 환자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해나의 의도는 순수하게 그를 치유하기 위해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을 곰곰이 살펴보면 해나의 행동이 단순히 자기희생적이며 헌신적인 행동만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카라바지오와 킵이 나타나기 전 홀로 남은 빌라에서 그녀는 알마시를 돌보기 위해 노동을 하고 책을 읽어주는데 그녀는 이 영국인 환자에게 성인이라는 정체성을 덧입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알마시를 대하는 헤나의 내면은 단순히 환자를 대하는 의료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을 통해서 사람이 타인을 돕는 심리적인 동의는 복잡하고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